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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풀코스 도전기, 조선일보 춘천 국제마라톤 2017

작년 가을 쯤, 회사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버스에서 정신이 아득해 쓰러질 뻔 한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허망감과 절망감이 몰려왔고, 하루하루를 꿈없이 살아가는 것도,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 갑갑한 현실과 부정적인 생각에서 잠시동안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달리기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껴오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1k도 숨이 턱 밑으로 차올랐던 나였기에, 42.195k를 완주하리라 감히 상상치도 못했다.
춘마 목표는 장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

하프 무경험자인 나에게 풀코스 완주는 단연코 무리였다. 뛸 수 있을 만큼만 최선을 다해 뛰고자 했고, 여의치 않다면 수거차를 타고 오리라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대회장에서 엄마를 만나 63토끼 아버님 어머님들께 진한 응원을 받고 H그룹 미기록보유자 그룹에 대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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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15k까지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단풍이 완연한 의암호수를 뛰며 그림 한 폭 같은 경관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사진도 찍고 여유도 부리며 신나게 뛰느라 나도 모르게 5분 30초 대로 뛰고 있었다. 그래, 이대로만 끝났으면 좋았을 뻔 했다.

예상외로 하프까지는 할 만 했다. 그러나 25k 부터 발목과 종아리가 아파왔고 28k부터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이 안 움직이니 앞으로 나갈 수 없어 정말 고통스러웠다. 더 뛸 수 있는데 움직일 수 없으니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싶었다.
30k에 다다르자 이제부터 진짜 마라톤 시작되었음을 느겼다. 아, 이 것이 마라톤이구나! 이전에 해왔던 달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달리기하는 폼만 잡아왔던 것이다.

걷고 뛰기를 수없이 반복하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보고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스트레칭, 숫자 100까지 세기, 바닥만 보고 달리기, 파워젤 먹기, 진통제 먹기, 바셀린과 맨소래담 바르기, 음악 듣기까지.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따. '내가 여기 왜 있나' 생각으로 가득찼고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수거차를 기다릴까 싶었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도 고비였다던 35k부터는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뛰었는지도 기억에 나지 않는다.

"포기하지 마세요"

이름 모를 누군가가 외친 그 한마디를 마음에 품고 달렸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라톤 동호회 분들, 자원봉사 친구들, 일반 시민 분들의 응원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그 힘으로 버티며 한 발씩 나아갔다.

마지막 1k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무모한 도전이 현실이 될 생각을 하니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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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쩌다보니 풀코스를 완주했다.
풀코스 우승자이신 엄마에게 메달을 보여드려, 그 딸 임을 드디어 인증하게 되어 행복했다. 수만킬로를 달려오신 마라토너 엄마를 둔 것이 자랑스러웠고, 튼튼한 두 다리와 건강한 정신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공식 기록은 4시간 59분 59초이다. 5시간에 꼭 맞춰 들어왔다.

2017년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은 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한계를 스스로 넘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목표를 향해 나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전을 현실로 만든 가슴벅찬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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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 발이 되어준 아식스 퓨젝스 러쉬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