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최초의 영어 데이터 컴파일러를 만든 그레이스 호퍼, 아폴로 계획의 비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마가릿 해밀턴, 세계 최초로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든 메리 리 우즈 버너스 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컴퓨터 과학 역사에서 전설적인 흔적을 남긴 여성 엔지니어라는 점이다.[1][2]

그러나 오늘날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STEM) 분야에서 여성들의 수는 매우 적다. 2016년도 여성과학기술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여성과학인 비율은 19%에 그쳤고, 지난 몇 년간 이공계 진학 여성 비율은 30% 이하를 웃돌고 있으며, 리더급 여성 비율은 8%를 겨우 넘겼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컴퓨팅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성 격차(Gender Gap)은 매우 심각하다. 국내 소프트웨어(SW) 분야 여성 인력 비중이 미국, 영국 등 SW선진국 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며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신입생의 30%에 육박하던 공대 여학생들은 취업과 진급을 거치며 점점 이탈해, 10여 년 뒤 직장의 중간관리자(팀장)급이 되면 전체의 8%만 살아남게 된다.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인생 중 가장 꽃을 피울 시기에 대부분의 여성이 결혼과 육아 문제로 경력이 단절되어 기술 업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급격한 기술 혁명의 물결 속에 성별에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다양성(Diversity)은 그 자체로 강력한 경쟁력으로 기업의 이익과 미래 성장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여성 고용을 늘리는 것이 국내총생산을 더 올리는 것이며,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숫자가 미래 경쟁력의 척도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최근 정부와 기업이 나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다양한 여성 엔지니어 지원하고자 노력하고자 있다. 그 예로 대표 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역시 기업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하며 기업 내 여성 엔지니어의 활약을 조명하고 여성 임직원 비율을 높여나가는 중이다.

그의 일환으로 지난 4월 7일, 국내 기술 업계의 여성들을 지지하고 후원하기 위한 축제가 열렸다. 구글 코리아의 '우먼 테크메이커스 코리아(Women Techmakers Korea)'가 그것이다. 2014년부터 구글은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커뮤니티와 협력해 매년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우먼 테크메이커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구글은 그동안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을 위한 다양한 기회와 커뮤니티 지원을 제공하고, 구글 라이즈 어워드를 통해 여성과 저임금계층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컴퓨터공학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를 후원해왔다. 우먼 테크 메이커스 역시 다양성 증진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기술 분야 내 여성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조명하고 더 많은 여성들이 기술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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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회를 맞이한 우먼 테크 메이커스 코리아는 국내 기술 업계의 다양성을 장려하고, 여성들의 기술적인 성장과 경험을 공유하는 대표적인 테크 컨퍼런스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행사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선후배, 동료 여성 과학기술인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간 멘토십을 강화하는 등 서로 돕는 문화를 확산시키고 업계의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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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이공계 여학생, 여성 엔지니어 등 500명이 참석했다. 국내 유수 IT 기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부터 스타트업 대표, 이공계 여학생까지 유리 천장을 깨나가고 있는 여성 리더들이 기술, 커리어, 경력개발, 커뮤니티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강연이 끝난 후 연사들과 직접 만나 깊이 대화할 수 있는 라이트닝 토크 세션도 마련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가자를 위한 웰컴 키트는 물론 커피와 다과 등 케이터링도 더해져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행사를 후원한 유명 스타트업들의 채용 부스도 열렸다. 참여한 스타트업 중 한 곳은 현장에서 지원한 한 여성 개발자를 실제로 채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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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연 이외에도 IoT 기술을 체험하고 실습할 수 있는 세션인 '코드랩'도 마련됐다. 구글 IoT 전용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띵스(Android Things)와 구글 클라우드 데이터 플로우(Cloud Dataflow)를 이용한 인공지능 챗 봇 만들기를 실습할 수 있었다. 구글 디벨로퍼스 그룹 코리아 커뮤니티의 멤버들이 멘토로 참여했다.

아이들 둔 엄마, 아빠를 위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였다. 평소에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기술 세미나나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힘들었던 엄마 엔지니어를 위해 아이를 맡기고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아이돌봄방을 운영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랜 만에 나들이 겸 기술 행사에 왔다는 엄마 엔지니어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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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우리나라의 '우먼 테크메이커스'들은 커리어를 쌓으며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이들이 개개인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비교하면서 그들이 느꼈던 좌절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조별 프로젝트에서 중요하지 않는 일에 배정된 학생,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해 전과 고민하는 학생,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 인문계 학생, 가정과 일 모두 잘하고 싶은 엄마, 회사 내 성차별을 겪은 여성 개발자 등 여성 엔지니어들 대부분은 자신의 문제를 개인의 인내와 노력으로 해결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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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참가자는 "그동안 자기가 겪고 있던 좌절, 상처는 자신의 능력, 재능, 헌신이 부족한 결과가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에 한 연사자는 "여성 스스로 적극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으며,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서로가 기꺼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답하며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를 바꾸기 위한 책임은 여성이 아니라 사회에 있으며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에도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구글 테크메이커스 행사를 담당한 구글 코리아 커뮤니티 매니저는 "우먼 테크메이커스를 통해 여성 개발자, 엔지니어들이 선후배 간의 커리어와 경험을 공유하고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한 앞으로도 "테크업계 여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커뮤니티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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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더이상 남성의 영역이 아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부수며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던 여성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그들은 길을 만들고 역사를 썼다.  앞으로 기술 분야의 여성들의 참여를 지원하고 그들이 세상에 발휘하는 영향력을 조명하고 공유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래야 우리 시대 제 2의 에이다 러브레이스, 그레이스 호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블로그 4월자 기고 ↩︎

  2. Photo Credit. Jack Ladenburg ↩︎